퇴근 후 집에 들어왔는데 평소와 다른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거나, 모래상자 주변에 묻어있는 묽은 변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경험,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통과의례입니다.
성묘라면 하루 이틀 정도 지켜볼 수 있지만, 생후 2~6개월 미만의 아기 고양이(키튼)에게 설사는 단순한 배탈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신호일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기 고양이는 성묘에 비해 체수분량이 적고 면역 체계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만 설사를 지속해도 급격한 탈수가 오고, 이는 저혈당 쇼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오늘 글에서는 당황한 집사님들을 위해 수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원인 분석부터 당장 실천해야 할 홈케어 방법까지 상세하게 정리해 드립니다.
목차
1. 단순 배탈 vs 바이러스: 색깔과 냄새로 구분하는 법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변의 상태입니다. 수의학에서는 변의 묽기(Fecal Score)와 색깔, 냄새를 통해 원인을 1차적으로 추론합니다.
- 사료 교체 및 과식 (식이성): 변이 묽지만 형체는 어느 정도 남아있고(무스 형태), 색깔도 평소와 비슷한 갈색 계열이라면 식이성 원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기 고양이의 장은 매우 예민하여 사료를 바꿀 때는 일주일에 걸쳐 서서히 섞여 먹여야 합니다.
- 기생충 감염 (원충 등): 길에서 구조했거나 다묘 가정에서 입양된 경우 흔합니다. 변에서 쌀알 같은 것이 보이거나, 점액질이 섞여 콧물처럼 나오는 경우 콕시듐이나 지알디아 같은 원충 감염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 바이러스성 (범백혈구감소증 등): 가장 위험한 경우입니다. 피가 섞인 혈변을 보거나, 코를 찌르는 듯한 특유의 비릿하고 역한 악취가 납니다. 범백은 치사율이 매우 높으므로, 구토와 설사가 동반되고 아이가 기운이 없다면 즉시 키트 검사가 필요합니다.
2. 최근 집사들 사이에서 화제인 '마이크로바이옴'과 유산균 이슈
최근 반려동물 헬스케어 시장의 화두는 단연 '마이크로바이옴(장 내 미생물 생태계)'입니다. 예전에는 설사를 하면 무조건 항생제(지사제)를 처방했지만, 최근 수의학 트렌드는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이 오히려 장내 유익균까지 파괴하여 만성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아기 고양이의 경우 장내 환경이 정착되는 시기이므로, 설사 초기에는 약물보다는 유산균(Probiotics)과 프리바이오틱스를 통해 장내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이 우선시 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카로마이세스 보울라디(Saccharomyces boulardii)' 균주는 항생제와 함께 복용해도 생존하며 설사 완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많은 집사님들이 상비약처럼 구비하고 있습니다.
3. 절대 하면 안 되는 민간요법 (ft. 굶겨야 하나요?)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 중 하나가 "설사할 때는 하루 정도 굶겨서 장을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견이나 성묘에게는 통할 수 있는 방법일지 몰라도, 아기 고양이에게는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주의!
아기 고양이는 간에 저장된 에너지원이 매우 적습니다. 몇 끼만 굶어도 혈당이 급격히 떨어져 저혈당 쇼크로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설사를 하더라도 식욕이 있다면 소화가 잘 되는 습식 사료나 처방식을 조금씩 자주 급여해야 합니다. 절대 굶기지 마세요.
4. 병원 방문 전 집에서 할 수 있는 긴급 처치 루틴
병원에 가기 전, 혹은 한밤중에 증상을 발견했다면 다음 단계에 따라 조치하세요.
- 탈수 체크 (스킨 텐트 테스트): 고양이의 목덜미 가죽을 살짝 잡았다가 놓아보세요. 즉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가죽이 텐트 모양으로 서 있거나 느리게 돌아간다면 이미 탈수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 수분 공급: 깨끗한 물을 급여하되, 스스로 마시지 않는다면 주사기로 조금씩 입 옆으로 흘려 넣어주세요.
- 체온 유지: 설사는 체온 저하를 동반합니다. 담요로 감싸주거나 따뜻한 물주머니를 곁에 두어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세요.
- 변 사진 찍기: 병원에 갈 때 가장 중요한 진료 자료입니다. 변의 색깔, 묽기, 양을 수의사가 확인할 수 있도록 밝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두세요.
5. 이럴 땐 지체 말고 응급실로 뛰어가세요
아래 체크리스트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인터넷 검색을 멈추고 당장 24시 동물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아기 고양이에게 시간은 생명입니다.
- 설사와 함께 구토를 동반한다.
- 변에서 피가 보인다 (선홍색 혈변 또는 짜장면 색의 흑변).
- 잇몸이 창백하거나 하얗게 변했다.
- 불러도 반응이 없고 축 늘어져 있다.
- 체온이 37.5도 이하로 떨어지거나 40도 이상 고열이다.
Cornell Feline Health Center: 고양이 설사 가이드 (영문)
6. 마치며
아기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끊임없이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설사는 분명 무서운 증상이지만, 집사님이 얼마나 빠르게 인지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알려드린 내용을 기억해 두셨다가, 우리 아이가 보내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아기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맛동산'을 생산하는 그날까지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