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백혈병(FeLV), 양성 판정이 곧 시한부 선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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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백혈병(FeLV), 양성 판정이 곧 시한부 선고일까요?

 고양이 집사들에게 가장 두려운 단어를 꼽으라면 '복막염'과 더불어 '백혈병'이 반드시 포함될 것입니다. 이름부터가 주는 위압감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고양이 백혈병 바이러스(FeLV)는 전 세계적으로 고양이 사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며, 과거에는 진단이 곧 시한부 선고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의학 연구 결과들은 우리가 알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고양이가 바로 아프거나 사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고양이 백혈병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집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최신 관리 지침과 '잠복 감염'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1. 고양이 백혈병(FeLV)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고양이 백혈병 바이러스(Feline Leukemia Virus)는 레트로바이러스의 일종입니다. 이름은 '백혈병'이지만, 단순히 혈액암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바이러스는 고양이의 면역 체계를 억제하여 다른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거나, 림프종 같은 암을 유발하고, 빈혈을 일으키는 등 복합적인 전신 질환을 야기합니다.

 사람의 백혈병과는 다르며, 사람이나 개에게는 전염되지 않는 '고양이 특이적' 바이러스입니다. 하지만 고양이끼리의 전염력은 매우 강한 편에 속합니다.

2. 전파 경로: 왜 '우호적인 고양이의 질병'이라 불리는가?

 흔히 고양이 에이즈라 불리는 면역결핍바이러스(FIV)가 싸움을 통해 전파되는 것과 달리, 백혈병 바이러스는 '그루밍(Grooming)'을 통해 주로 전파됩니다.

 감염된 고양이의 침, 콧물, 분뇨, 모유 등에 다량의 바이러스가 존재하는데, 서로 핥아주고 밥그릇을 공유하는 친밀한 관계에서 감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수의학계에서는 이를 '우호적인 고양이의 질병(Friendly cat's diseas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묘 가정이나 길고양이 무리에서 한 마리가 감염되면 급속도로 퍼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 핵심 정보: 감염 후 나타나는 3가지 운명

 과거에는 FeLV에 노출되면 무조건 치명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신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의 면역력에 따라 감염의 결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 글의 핵심입니다.

  • 유산 감염 (Abortive Infection): 고양이의 면역계가 바이러스를 완전히 이겨낸 경우입니다.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제거되며, 항체는 생기지만 바이러스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옵니다. 가장 이상적인 케이스입니다.
  • 퇴행성 감염 (Regressive Infection):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면역계가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바이러스 활동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바이러스가 DNA 속에 숨어 잠복해 있습니다. 키트 검사에서는 음성 혹은 약양성이 나올 수 있으나, PCR 검사에서는 양성이 나옵니다. 이 경우 고양이는 증상 없이 수명을 다할 수도 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할 수 있습니다.
  • 진행성 감염 (Progressive Infection): 면역계가 바이러스 방어에 실패한 경우입니다. 바이러스가 골수까지 침투하여 지속적으로 복제됩니다. 키트 검사에서 강한 양성을 띠며,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보통 진단 후 수년 내에 관련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즉, "바이러스 노출 = 사망" 공식은 틀렸습니다. 우리 고양이가 퇴행성 감염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4. 진단과 증상: 키트 검사 양성,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동물병원에서 흔히 하는 스냅 키트(ELISA) 검사는 바이러스의 '항원'을 검사합니다. 여기서 양성이 나왔다면, 정말로 진행성 감염인지 확인하기 위해 1~3개월 후 재검사를 하거나, 외부 연구소에 의뢰하여 PCR(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양성이었다가 면역계가 작동하여 음성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 주요 의심 증상
  • 식욕 부진 및 체중 감소
  • 지속적인 구내염 및 잇몸 질환
  • 잘 낫지 않는 피부병이나 상부 호흡기 감염
  • 창백한 잇몸 (빈혈)
  • 림프절 비대

5. 치료 및 관리: 양성묘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

 안타깝게도 체내에서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하는 치료제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관리를 통해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철저한 실내 생활: 다른 고양이에게 전파를 막고, 본인도 외부의 다른 감염원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 스트레스 최소화: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가 깨어나지 않도록 스트레스 관리가 필수입니다.
  • 정기 검진: 6개월마다 혈액 검사를 통해 빈혈이나 장기 수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 중성화 수술: 발정 스트레스와 교미를 통한 전파를 막기 위해 컨디션이 좋을 때 수술을 권장합니다.

6. 전문 자료 및 참고 링크

 고양이 백혈병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정보와 최신 가이드라인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Cornell Feline Health Center (코넬대학교 고양이 건강 센터)
[FeLV 정보 페이지 바로가기]

설명: 일반 보호자들을 위해 가장 정석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제공합니다.

2. ABCD (Advisory Board on Cat Diseases) 가이드라인
[유럽 고양이 질병 자문 위원회 자료]

설명: 수의학적으로 매우 상세한 진단 및 예방 접종 프로토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혈병 바이러스는 분명 무서운 질병이지만, 지레 겁을 먹고 아이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세심한 관리가 있다면, 바이러스를 가진 고양이도 집사의 곁에서 오랫동안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막막해하는 집사님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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